2026. 5. 13. 12:45ㆍ여행

빠르게 다녀온 여행들
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여행은 늘 바빴다.
몇 박 며칠 일정을 짜고, 유명하다는 곳은 다 찍어야 직성이 풀렸다. 하루에 다섯 군데, 많으면 일곱 군데. 지도에 핀을 꽂는 것이 목적이었는지, 진짜 그곳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. 돌아오면 몸은 여행 전보다 더 피곤했고, 사진첩에는 사람 없는 풍경 사진만 가득했다.
그게 여행인 줄 알았다.

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한 하루
작년 가을, 경주에 혼자 갔다. 2박 3일이었는데 첫날 체크인하고 숙소 근처 골목을 한 시간쯤 걷다가 작은 찻집에 들어갔다. 쌍화차를 시켜놓고 창밖을 보다가 그냥 거기서 두 시간을 보냈다.
아무것도 안 했다.
사진도 별로 안 찍었다. 유명한 곳에 가지도 않았다. 그냥 차 한 잔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, 바람 소리 듣고, 낮잠을 조금 잤다. 그런데 이상하게 그 두 시간이 그날 하루 중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.
여행에서 처음으로 '쉬었다'는 느낌이 들었다.

나만의 속도라는 것
40대가 되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게 있다. 내가 어떤 페이스로 살아야 지치지 않는지. 어떤 환경에서 충전이 되고, 어떤 상황에서 소진되는지.
여행도 마찬가지더라고요.
누군가에게는 새벽부터 일어나 첫 기차를 타고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는 것이 에너지를 주는 여행이겠지만, 나에게는 한 동네에서 사흘을 보내는 것이 더 잘 맞았다. 같은 카페에 이틀 연속 가고, 시장 골목을 천천히 두 번 걷고, 해 질 녘에 아무 언덕에나 올라가 보는 것.
그게 나한테는 여행이었다.
배우는 중입니다
아직 완벽하게 느리게 여행하진 못한다. 여전히 일정표를 짜고 싶고, 안 가면 아쉬울 것 같은 곳이 마음에 걸린다. 하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쉽게 일정을 포기한다. 예쁘다는 카페가 줄이 길면 그냥 지나친다. 날씨가 좋으면 계획했던 실내 전시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있기도 한다.
느린 여행을 배우는 중이다.
그리고 그 속도로, 나라는 사람도 조금씩 다시 알아가는 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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